호기심을 따라간 곳에서 만난 이상한 나라
노효주 작가의 모든 작품들은 어떠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명징하지 못하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의도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작품 우측 하단에 적힌 작가의 말도 보는 이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 작품에서 ‘의미’보다 중요한 것은 ‘수용자의 느낌’이다. 하지만 BISKET 팀원들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패턴’ 이었다. 목이 긴 공룡 같은 형상,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날개를 단 이, 구름, 바다, (주로 묶여 있는) 그리스도 조각상……
이 반복되는 패턴들은 작가의 페르소나일까? 이들이 주제의식이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노효주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홈페이지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Welcome to my strange world.’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낸 것은 작가가 북반구에 산다는 것뿐이었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 팔로워는 19,000여명이었지만 작가는 SNS에서도 말을 아꼈다.
BISKET 콘텐츠 기획팀은 노효주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가는 서면 인터뷰를 원했다.
이 글은 BISKET 콘텐츠 기획팀이 작가에게 받은 내용을 대화체로 풀어낸 것이다.
노효주의 답변을 통해 떠올린 대가의 일화
BISKET (이하 ‘B’): 첫번째 질문은 작가님에 관한 것입니다. ‘노효주’는 본명인가요?
Hyoju Roh (이하 ‘R’): 네, 저는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씨 노 (盧), 효도 효 (孝), 두루 주 (周). 친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B: 작가님도 NFT 아트 씬의 다른 작가님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NFT 아티스트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홍보를 합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스스로를 철저히 감추고 계시죠. 노효주 작가님은 뱅크시처럼 ‘얼굴 없는 아티스트’를 추구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R: 작가마다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처럼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물론 저도 각종 매체를 통해 스스로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트위터를 다시 시작했어요. 세계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개인 홈페이지도 구축했고요. 하지만 노효주라는 ‘사람’보다는 ‘작품’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뱅크시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뱅크시 같은 ‘컨셉’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굉장히 단순한 패턴으로 살고 있습니다. 작품을 그리는데 전념하고 있어요. 한 작품이 완성되면 바로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을 시작합니다. 이 구상 단계에서 그림 속에 ‘애매한 이야기’를 넣죠. 이러다 보면 하루가 끝납니다. 저는 이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요. 이런 하루가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달력을 넘기게 됩니다.
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컨셉도 아니고 신념도 아닙니다. 저는 작품에 전념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하기 때문인지 아직은 제 진짜 얼굴을 노출할 생각이 없네요.
BISKET 팀원 한 사람은 이 대목을 읽고 미술계의 원로 김선두 선생님의 일화를 떠올렸다.
‘동양화’라는 말 밖에 없던 시절에 붓을 잡아, 스스로의 작품으로 ‘한국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김선두 선생님.
채색화와의 대가인 선생께서는 젊어서 군복무 하던 시절 내내 군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구를 챙겨 다니셨다고 한다.
스케치북과 연필이 바로 그것이었다. 군인 김선두는 풍경을 그렸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렸다.
선생께서는 군복무는 고되었지만 그렇게 습작에 몰두했던 시절은 ‘축복’과도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이 얘기를 들려준 팀원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 BISKET은 미래의 대가를 만난 것인지도 몰라요. 나는 김선두 선생님의 군복무 시절과 노효주 작가의 ‘지금’이 같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태. 이건 남이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즐거우니까 하는 거예요. 오래 가는 작가들은 모두 이런 시기를 통과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이 시기가 노효주 작가에게는 엄청난 자양분이 될 거예요.”
(노효주 작가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